삼 월 생
3월에 피어나는 것은 꽃만이 아니다. 3월에는 오랫동안 회색 서랍에 묻어 뒀던 노랗고 빨간 설렘이, 간절함이 마침내 눈을 뜬다. 싱어송라이터 삼월생의 음악은 겨우내 웅크렸던 소망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그 아프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어쿠스틱 팝의 옷을 입었지만 그 옷감에서는 서릿발 같은 세상을 겨우 버티는 두툼한 겨울 외투의 질감이, 때로는 희망의 말을 프린팅해 넣은 여름 옷의 솔기가 만져진다.
2022년 싱글 ‘너의 머리맡에 옅은 물이 되어’로 데뷔한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2021년부터 ‘백일몽’, ‘고해의 바다’, ‘구에서 일을 구원에서 구원을’, 세 편의 시를 발표했다. 시도, 음악도 언어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삼월생은 음운적으로 음향적으로 골몰한다.
3월은 아니지만 봄이 한껏 피어난 4월에 그를 만났다. 여의도의 볕이 잘 들며 카스텔라가 부드러운 카페에서 마주 앉은 그가 움을 틔우듯 카페의 소음에 묻힐 듯 말 듯 작고 세심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 임희윤 음악평론가
아티스트명처럼, 3월생이시죠? 어차피 인간의 12분의 1쯤은 3월생일 텐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예명으로 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삼월생 : 네. 2001년 3월 6일생이에요. 처음엔 그저 저와 관련된 의미 있는 뭔가로 이름을 짓고 싶었거든요. 3월은 일반적으로 뭔가를 시작하는 이미지가 있어서 좋았죠. 근데 제 생일이 6일이라서 너무 개학 초이다 보니 새로운 친구들에게 축하받지 못하고 ‘아, 너 생일이었네?’ 하고 지나가는 일이 잦았죠. 안 그래도 제가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심했거든요. 그러니 태생적으로 외로운 저의 마음 같은 이미지가 ‘삼월생’이란 이름에 자연스레 담기기도 했죠.
음악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삼월생 : 기타를 치고 시를 쓰는 형에게서 영향받았어요. 집에 있는 기타를 중 학생부터 잡고 독학했어요. 생각해 보니 그 무렵 ‘슈퍼스타K’에서 곽진언 씨가 우승하는 걸 챙겨보며 큰 영향을 받았어요. 하지만 고2 때까지도 시를 쓰거나 사진을 찍는 쪽으로 진로를 막연히 생각했죠. 그런데 고3 시작할 때 친한 친구가 ‘너 어차피 결국엔 음악 할 놈이니까, 시작이라도 해보라’며 멱살이라도 잡듯이 절 끌어줬죠. 나중에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니 제 꿈은 중고교 6년간 늘 ‘싱어송라이터’였더라고요. 고3 초기에 실용음악 학원에 등록하고 입시 준비를 했어요. 3수 끝에 2022년에 보컬 전공으로 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했고 지금껏 공연하고 곡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본인 음악의 강점이 뭐라고 보세요?
삼월생 : 가사요. 음악도 언어이고, 언어란 말하듯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잘 담아내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사를 쓸 때 시를 쓴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제 음악을 들은 적잖은 분들이 ‘뭔가 처음 들어보는 느낌이다’라는 말을 해주실 때 힘이 돼요.
시도 여러 편 발표하셨죠?
삼월생 : 독립출판사에 투고한 것이 선정돼서 2021년과 2022년에 총 세 번, 감사하게도 시를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음악에 더 집중했어요. 사실 시를 쓸 때의 몸과 음악을 할 때의 몸은 아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를 쓸 때는 거의 불 꺼놓고 밤을 새워 가면서 제 내면의 것들로만 파고드는 편이에요. 반면, 노래를 쓰고 부르려면 많이 깨어 있어야 하죠. 시를 쓰는 조형민이란 사람과 음악을 하는 삼월생이라는 자아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거죠. 사실 아직 시를 다시 쓰고 싶어요. 하지만 뭔가 돌아가 버릴까 봐…. 조금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제대로 시인으로서 등단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있습니다.
지난 2월에 MPMG 주최 싱어송라이터 경연대회인 ‘원콩쿨’ 에서 우승하셨죠. 삼월생에게 원콩쿨은 어떤 무대였나요.
삼월생 : 경연에 꾸준히 참가한 편인데, 몇 년 전에 KT&G에서 하는 ‘상상유니브 집현전’이란 곳에서 결선에 오른 정도 말고는 뚜렷한 성과가 없었어요. 사실 입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원콩쿨은 아무 기대 없이 지원해 본 무대였죠. 어쩌면 그렇게 힘을 빼서 좋은 결과가 있었을까요. 제가 면역력이 약해서 늘 아픈 편인데 경연 날도 심지어 몸이 안 좋기까지 했거든요. 우승이란 결과를 받았 을 때 정말 믿기지 않았고 눈치까지 보였답니다. 원콩쿨은 악기 하나와 목소리 하나만으로 겨뤄야 하는 특별한 경연이라서 더 의미 있었어요. 제겐 너무 감사한 일이죠.
롤모델이 있다면요?
삼월생 : 제가 어렸을 때부터 형이 집에서 검정치마의 노래를 많이 들려줬어요. 그러니까 작사가 중에서는 조휴일 씨요. 해외에 살다 오셔서 우리말이 서투르셨을 텐데도 신선한 한국어 표현들을 음악에 사용하시는 게 어린 나이에도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곽진언, 고 김광석 님.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느낌에 늘 도전하는 것으로 치면 (미국 싱어송라이터) 본 이베어를 존경합니다. 그의 1집 ‘For Emma, Forever Ago’에서는 기타의 변칙 조율로 남 눈치 안 보고 과감한 도전을 하고요. 이후 앨범들에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잖아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으로는 역시 ‘쌀아저 씨’ , 데이미언 라이스요. 얼마 전 내한공연을 보러 갔는데 저도 모르게 계속 울고 있더라고요. 언어를 뛰어넘어 가슴으로 다가오는 싱어송라이터예요.
5월에 신곡을 내신다고요.
삼월생 : 5월 2일에 더블 싱글 ‘Shimmering Youth’를 냅니다. ‘청춘광’과 ‘Shimmer’란 곡이 담겨요. 2024년 5월부터 ‘어슴푸레’부터 10월 ‘어설픈 애’까지 이어온 연작, 그 뒤의 이야기예요. 신곡 ‘Shimmer’는 더블 싱글 ‘어슴푸레’에 담았던 곡 ‘해진 내 이불’을 연주곡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코러스를 늘 도와주는 ‘슬’이란 친구가 녹음 중에 실수로 인스타그램 릴스를 틀었는데 그 커다란 음향까지도 살려서 장난스럽게 마무리해봤어요. 제목처럼 ‘쉬머링 리버브(shimmering reverb)’ 음향 효과도 활용했어요 . 아는 형과 한강변을 산책하다가 윤슬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거든요. 윤슬을 음향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낙원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해봤습니다. ‘청춘광’은 저와 함께하는 음악 크루 ‘Youth’와의 추억을 담은 곡이고요.
올해와 내년에 계획하는 것,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와 꿈을 여쭙습니다.
삼월생 : 빠른 시일 내에 첫 EP(미니앨범)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곽진언 님의 ‘소품집’이란 앨범처럼 보컬과 기타라는 뼈대에 충실한, 가사를 말하듯 전달하는 형식의 음반요. 장기적인 꿈과 목표는 제 예명 삼월생에 들어있어요. 3월은 ‘봄’ 이죠. 제가 봐온 것들, 지금 보고 있고 앞으로 보게 될 것들을 꾸준히 쓰고 음악에 담아내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저의 노래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극장에서 들리는 기적을 상상합니다.
인터뷰 | 임희윤 (음악평론가) 사진 | 민희수 (2Fyou)
디자인 | 김예지 기획 | GROI / 구자영
에디터 | 이서인 이동석 발행 | 킨디라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