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즈데이비치클럽
때론 없는 곳에 가보고 싶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그런 곳에 나 홀로 닿아 세상사 잠시 잊고 그저 존재 자체의 무게로 부유해 보고 싶다.
밴드 '튜즈데이 비치 클럽(Tuesday Beach Club)'이 만들어내는 청각의 공간은 어떨까. '클럽'이긴 클럽이되 그것은 어느 곳에도 어떤 대지나 건물도 갖고 있지 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들을 때마다 저 멀리 어딘가로 듣는 이를 데려간다. 드림 팝이라 불러도 좋고, 사이키델릭 록이나 슬래커(Slacker) 록이라 불러도 좋다.
보컬 김예담의 꿈꾸는 듯한 목소리는 멜로트론처럼 낡은 건반 소리, 흐물흐물한 전기기타 소리 따위에 얹혀 화요일이나 해변, 아니면 그 어떤 다른 곳으로 매번 듣는 이를 이끌어 닿게 한다. 몽환적이지만 선명한 멜로디는 가요나 팝송처럼 친근하기까지 하다. 매일매일 가상의 클럽을 짓고 부스는 청각의 건축가 세 사람, 김예담 우성림 조용준을 서면으로 만났다. 즐겨 쓰는 악기와 요즘 생각까지 가감 없이 털어놨다. 다음엔 아마도 클럽에서...
- 임희윤 음악평론가
튜즈데이 비치 클럽, 이름부터가 독특해요. 처음 이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결성 수 년이 지난 지금이 팀명에 멤버들이 활동하며 새로 담게 된 의미나, '세월 지나 다시 보니 이 느낌이네' 같은 소회가 궁금합니다.
용준 : 예전에 밴드원들끼리 닭발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아무렇게나 이름을 던지던 중에 정한 이름이에요. 특별히 거창한 의미를 담진 않았고, 당시 저희가 매주 화요일마다 모였던 게 'Tuesday'라는 단어를 고르게 된 계기가 됐죠. 그 이후에는 '화요일 해변가의 한산한 클럽을 연상시키는 음악' 같은 이미지도 덧붙이게 되었고요. 지금 돌아보면, 우연히 붙은 이름치고는 저희 음악과 꽤 잘 어울리는 좋은 이름인 것 같습니다.
5월에 싱글 'Wish'를 냈죠. 도입부의 멜로트론에선 'Strawberry Fields Forever' 시절의 비틀스가 떠올랐어요. 슬픈 발라드인데, 이 곡을 만들게 된 배경 이야기가 있을지, 음악적으로 제작은 어떤 지향점을 갖고 해냈는지, 특별히 사운드나 악기 사용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나요. (여성과 남성의 보컬이 교차하는 것도 인상적인데, 남성 보컬은 누가 소화했는지,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뭔지도요.)
성림 : 우선 'Strawberry Fields Forever'는 제가 정말 정말 사랑하는 곡이에요. 비틀스는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멜로트론이라는 악기를 즐겨 쓰게 된 것도 비틀스의 영향이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저는 녹음기를 켜놓고 기타나 건만을 치면서 곡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요, 'Wish'의 첫 가이드가 녹음된 날짜가 2025년 1월 27일이에요. 돌아보면 그 시기는 저희가 2nd EP [Color] 발매 쇼케이스를 마친 직후였고, 밴드의 앞으로의 방향이나 올해를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이 많던 시기였어요. 그런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이 이 곡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Wish'를 만들 때는 무엇보다 뻔하지 않은 발라드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지향점 때문에 여러 가지 사운드적 요소들을 고민하면서 곡을 완성해갔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기타 솔로 부분에는 링 모듈레이션 계열의 이펙터를 사용했고, 전반적으로 최대한 담백하면서도 좋은 멜로디 라인을 만들기 위해 많이 신경 썼어요. 또 믹스에서 잘 드러나진 않지만, FX나 후렴 뒤편에도 Moog 신디사이저를 배치해서 곡의 질감을 채웠던 점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아마 많은 분들이 가장 인상 깊게 들으셨을 부분은 남성 보컬이 메인으로 등장하는 대목일 것 같은데요. 사실 그 목소리는 제 목소리입니다. 평소에도 대부분의 곡을 제 목소리로 가이드 녹음하는데, 'Wish'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날 예담이가 저희 집에서 작업을 하다가 제 목소리로 녹음된 가이드를 듣더니, "이 부분은 그냥 오빠 목소리로 가자"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가 아직 가사 작업을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자연스럽게 '화자가 바뀌는 스토리텔링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 보컬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고, 그 그리워하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구성이요. 그렇게 두 개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하나의 이야기처럼 완성된 곡이 'Wish'입니다.
가사가 영어일 때도, 한국어일 때도 있어요. 어떤 언어로 노랫말을 쓸지는 곡을 쓰기 전부터 정하는 건지, 언어를 정하는 기준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면 더 좋고요.
용준 : 언어는 보통 멜로디 스케치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편이에요. 저희 곡의 멜로디는 성림이가 모두 쓰는데, 그 과정에서 흥얼거리는 가사가 영어로 나올지 한국어로 나올지가 정해지는 거죠. 예를 들어 저희의 첫 싱글 'LOBSTER KING'도 스케치할 때부터 영어로 흥얼거리며 만들었던 곡이에요. 이 곡의 초기 데모는 저희 데뷔 2주년을 맞아 사운드클라우드에 따로 올려두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들어보셔도 재미있을 거예요.
보컬 김예담 님의 도톰하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는 그룹의 선명한 청각적 인장인데요. 이런 목소리는 타고난 것인지, 연마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음색, 창법, 카리스마 등 여러 면에서 각각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보컬리스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예담 : 예전에는 제 목소리가 너무 평범하다고 느껴서, 오히려 좀 허스키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지금도 아주 허스키한 편은 아니지만 예전에 불렀던 영상들을 다시 보면 꽤 맑은 톤이더라고요. 아마도 계속 노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톤이 잡혀 온 게 아닐까 싶어요. 좋아하는 보컬리스트는 리한나, 비욘세, 그리고 요즘에는 SZA도 정말 좋아해요. 공통적으로 무대 위에서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아티스트들인데 저도 그런 에너지에 늘 끌리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적이고 복고적인 분위기도 밴드의 색깔에서 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멤버들이 요즘 빠져 있는 옛날 음악, 복고 문화가 있다면 어떤 건지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성림 : 요즘 마이클잭슨 [Off the Wall] 앨범의 'Don't Stop 'Til You Get Enough'라는 곡과 [Thriller] 앨범을 자주 듣고 있어요. 뭐랄까, 세계 최고의 팝스타가 가진 압도적인 기세와 에너지가 그대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저까지 덩달아 고양시키는 것 같아요. 예전에 'Man In The Mirror'의 멀티트랙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는데, 보컬 메인 트랙 안에 발 구르는 소리, 박수 치는 소리 등등이 다 들어가서 녹음되어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물론 소스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는 것이 더 큰 가치일 수 있겠다는 걸요. 저는 이런 부분들이 바로 그 시대 음악이 가진 진짜 묘미라고 생각해요. 요즘 저희가 빠져 있는 복고적인 감성도 결국 이런 '날 것의 에너지'와 '순간의 감정'을 사랑하게 된 데서 출발한 것 같아요.
예담 : 얼마 전에 작업실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정말 갑자기 유재하 선생님 노래가 떠올라서 들어봤어요.듣자마자 왜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 음악을 사랑하는지 알겠더라고요. 특별한 기교 없이 부르는 목소리와 꾸밈없는 가사들이 오히려 더 마음을 울리더라고요. 요즘처럼 사운드나 스타일이 점점 화려해지는 시대에 그런 진심이 느껴지는 음악이 주는 감동은 훨씬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용준 : 요즘은 조지 벤슨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에 빠져서 자주 듣고 있어요. 저는 열여덟 살 즈음, 음악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되면서 모타운 음악에 푹 빠졌었어요. 지금은 예전만큼 자주 듣지는 않지만, 여전히 1970~1980년대 솔(soul) 음악에서만 느껴지는 오묘한 감정을 좋아해요.
만약에 진짜로 어떤 정서적 피난처 같은 클럽을 물리적으로 어딘가에 만든다면, 무슨 요일에 갈 만한 어떤 입지를 갖고 있는 곳일까요. (예를 들면 토요일 오후에 차 한잔할 만한 등산로의 클럽이라든지.... 밴드가 지금껏 발표한 곡과 비교해서 말씀해 주셔도 좋겠어요. A라는 노래 같은 경우엔 수요일 지리산 뱀사골 계곡이 어울린다든지....)
예담 : 저는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카페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밖에서는 파도가 치고 바람도 불지만 그걸 멀리서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아주 고요하고 편안한 공간이요. 저희 음악도 그런 공간처럼 휘몰아치는 마음을 잠시나마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네요.
용준 : 그런 상상 자체가 참 즐겁네요. 저는 일요일 저녁, 한 주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조용히 준비할 수 있는, 1인용 숙박 공간 같은 고요한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성림 : 만약 정말로 정서적 피난처 같은 클럽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면, 일요일에 늦잠을 푹 자고, 대충 모자만 눌러쓰고 올라갈 수 있는 산 위의 클럽이면 좋을 것 같아요.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고, 그곳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 마시는 풍경이 떠오르거든요. 그 공간에서 저희 음악을 듣는다면 'Ever'를 들을 것 같아요. 일요일의 느긋함, 바다와 산이 함께 주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Ever'의 따뜻한 감성과 어울릴 것 같거든요.
튜즈데이 비치 클럽의 음악에서는 매번 어떤 복고풍 신시사이저 음악이 나올지를 기대하고 듣는 재미도 있어요. 복고적 느낌으로 즐겨 쓰는 기타 모델/이펙터, 신시사이저 모델/플러그인 같은 것들이 있다면 귀띔해 주시겠어요?
성림 : 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기타를 사용하고 있어요. 펜더의 "62 커스텀 헤비 렐릭' 모델인데, 오랜 시간 저와 함께하다 보니 이제는 제 음악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죠. 이 기타는 1962년 펜더 기타를 복각해 리이슈한 모델이라, 빈티지한 톤을 잘 살려주고 저희의 음악과도 잘 어울리는 소리를 내주는 것 같아요.
초창기 저희 음악에서 신시사이저는 주로 플러그인으로 많이 사용했어요. Arturia의 Prophet-5 V, Jun-6 V, 그리고 Togu Audio Line사의 TAL-U-NO-LX를 특히 즐겨썼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꼭 하드웨어로 연주하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지금은 그 소망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플러그인으로만 사용하던 악기들을 실제 하드웨어로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Roland의 JUNO-106, Moog의 Matriarch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Sequential사의 Prophet-5도 새롭게 들이면서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올해와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것, 그리고 밴드로서 인간으로서 장기적인 목표와 꿈이 궁금합니다.
용준 : 올해 하반기에는 앨범 발매와 11월 단독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희는 보통 연초에 그해 계획을 세우는 편이라 내년 일정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고요. 개인적으로는 '흘러가는 대로 살자'는 삶의 태도를 가져왔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에 약간 의문이 들기 시작해서 조금씩 계획을 세워보려는 중입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겠네요.
예담 : 올해는 앨범 작업과 중간중간의 공연들, 그리고 11월에 예정된 단독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좋은 음악과 좋은 공연을 계속 들려드리는 게 밴드로서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목표인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밴드에서도 제 삶에서도 뭐든 나답게 잘 헤쳐 나가자라는 목표가 생긴 것 같아요. 흔들릴 때도 있지만 결국엔 제 자신을 지키면서 오래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성림 : 올해는 연말에 발매와 함께 공연을 계획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저희가 했던 공연들 중 가장 큰 규모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저희도 많이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목표와 꿈을 이야기하자면, 결국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음악을 해나가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이에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결국 음악을 이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마음이 저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거든요. 꾸준히, 오래, 그리고 진심을 담아 음악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저의 가장 소중한 꿈입니다.
인터뷰 | 임희윤 (음악평론가)
사진 | Tuesday Beach Club 제공
기획 | GROI / 구자영
디자인 | 김예지
에디터 | 이서인 이동석
발행 | 킨디라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