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늘의
오늘 여름날은
어떤 온도일까
화려한 숏폼 콘텐츠 속, 감각적인 춤 동작과 반짝이는 것들에 홀리기도 한다. 몇 초의 자극에 끌려 반사적으로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 올린다. 그러나 화면 속 세상은 문득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한 것처럼 끝나고 우리는 ‘롱 폼’의 삶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쉽지만 단아한 우리말 가사, 순정한 멜로디로 다가오는 이오늘의 노래들은 빠르지 않다. 어서 다음 편을 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귓가에 은은하게 남아서 그 언저리를 서성이게 한다. 우리가 한때 사랑했던 20세기 한국 발라드들이 그랬듯, 슬며시 머리 위로 우산을 건넨다.
덥고 습하며 변덕까지 심한 2023년 한국의 여름밤에 이오늘이 적절한 새 발라드로 돌아왔다. 제목부터 ‘그대는 나의 열대야 되어’다. 어떤 댄스곡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랑은 늘 훨훨 타오르는 불꽃인 것만은 아니다. 사랑은 도망갈 데 없는 열대야처럼 때로 그저 덥다. 이오늘의 오늘 여름날은 어떤 온도일까.
인터뷰.글: 임희윤
사진: 스튜디오 빌리빈
편집: 곽대건
본명 김슬기에서 활동명을 이오늘로 바꾼 지 3년이 좀 안 됐죠? 활동명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지, 이오늘은 어떻게 정하게 된 이름인지, 다른 후보는 뭐였는지 살짝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오늘'에서 아이유의 예명(?)이자 노래 제목인 '이지금'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혹시 작명에 영향을 준 인물이나 생각이 있다면?
처음 본명으로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스스로 아티스트라는 자각이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노래가 하고 싶었고 작곡은 그저 내가 부를 노래를 만드는 부수적인 활동이었죠.
그래서 그때는 음악에 대한 고민이 크게 없었어요. 점점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곡을 쓰는 것 그 자체의 기쁨을 알았고 어떤 이야기를 담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그 생각이 명확해질 때쯤 이오늘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어요. 이오늘은 “이”(this) 와 “오늘”을 합쳐서 만든 “오늘”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이름이에요. ‘오늘을 살자’는 제 가치관이 담아서 만들었어요. 활동명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이름이어서 다른 후보나 영향을 준 인물은 없어요.
이오늘의 음악은 종종 늦은 밤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곡 작업을 밤에 많이 하는 편인지, '밤형 인간'인지 궁금해요. 또,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이 있다면? 그 밤이 음악이 되었는지도요.
평소에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긴 한데 곡 작업은 밤에 잘 하지 않아요. 오히려 작업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찍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하는 편이에요. 저는 그편이 더 집중이 잘 돼요.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을 생각해 보니 20살이 됐던 그해 2월에 서울에 올라와서 잠들던 첫 밤이 생각나네요. 대학교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설레면서도 겁도 나고 묘한 기분에 한참 잠 못 들고 천장만 말똥말똥 쳐다봤던 기억이 나요. 얼핏 열심히 음악 하자, 성공하자 따위의 다짐들을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나요.
신곡 '그대는 나의 열대야 되어'는 한여름에 딱 맞는 제목과 가사를 지닌 듯하네요.
절절한 사랑 노래인데 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지요. 잔잔한 어쿠스틱 팝 느낌의 이렇게 애절한 사랑 노래는 보통 겨울밤이나 가을밤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열대야와 짝사랑이란 조금은 낯선 키워드를 연결하게 만든 착안점 또는 사연이 궁금합니다.
제가 작년 여름에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급하게 오느라 에어컨이 없었거든요. 열대야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이 더운 여름날의 밤이 마치 온몸으로 열병을 앓는 짝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의 인생을 계절에 비유할 때 여름은 청춘에 빗대곤 하잖아요. 싱그러운 청춘에 가득한 열기를 머금고 한껏 앓게 되는 여름밤의 시간이 마치 우리가 한 번쯤은 겪었던 짝사랑과 꽤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이 곡의 감성이 절절하긴 하지만 저는 한편으론 꽤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이 곡의 관점으로 사랑하고 싶어요.
'그대는 나의 열대야 되어'는 목소리 하나로 시작하네요. 이어서 어쿠스틱 기타, 슬라이드 기타가 하나씩 추가되고 결국엔 점점 드라마틱하게 편곡이 전개되는데요. 음악의 최소 단위인 음성만으로 시작해 이렇게 점층적으로 구성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뭔가요.
“그대는 나의 열대야 되어”라는 이 문장을 군더더기 없이 제일 먼저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목소리로만 곡을 시작하기로 결정했어요. 짝사랑은 어떤 사소한 계기에서 시작돼서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커지는 것 같아요. 그 깊어지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점층적으로 구성했어요.
이오늘 님의 여러 곡을 살펴 보니 영어나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간결하게 감성을 잘 전달하는 가사들이 인상적입니다.
혹시 시나 문학 작품을 사랑하시나요. 좋아하는 문학, 음악 하는 데 영향을 끼치거나 특정한 곡에 강한 영감을 준 글 같은 것들이 있다면 사연과 함께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듣는 것만큼 읽는 걸 좋아했어요. 주로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이 담긴 수필을 읽는 편이고 공감 하든, 공감을 못 하든 그 주제에 비롯된 제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문장이나 단어들이 제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 말들이 가득해질 때쯤 음악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제 곡 중에 [그대에게만은] 은 ‘그대가 이 세상이 너무 허무해 세상을 저버리고 싶을 때 그래도 구태여 하루를 더 살게 만드는 마지막 미련이 되어주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출발한 곡이에요.
이 곡을 쓰기 전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와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있었는데 이 두 책에 죽음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라는 게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라 삶과 같은 선상에 놓인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젠가 우리 모두 반드시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겠지만 그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하고, 사랑이 삶의 원동력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생각들이 정리되어서 [그대에게만은]이 만들어졌어요.
이오늘 님의 오늘은 어땠나요. '감성 싱어송라이터'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부터 글을 읽거나 쓰고 악기 연습을 한다든지 하는, 음반 작업을 하지 않는 평범한 하루의 구성이 궁금합니다.
정말 소소하게 보내서 조금 부끄러운데(웃음), 보통 아침 8-9시쯤 일어나서 한참 뭉그적거리다가 그린 스무디를 갈아 마시고 수영을 다녀와요. 다녀와서 베리(반려견) 산책을 다녀오고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1시쯤 돼요.
그때부터 저녁까지 쭉 해야 할 일과를 하는 것 같아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한다던가, 평소에 써보고 싶었던 무드의 곡을 기록해 놓거나, 노래 연습을 하거나 등등이요. 그러다 출출해지면 이른 저녁을 먹고 베리랑 저녁 산책 다녀오고 밤이 되면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편이에요.
음악이란 예술에 푹 빠지게 된 운명 같은 순간이 있었나요. 그 순간 어떤 음악이 어떤 환경에서 흐르고 있었는지, 혹시 그 순간이 여전히 이오늘 님의 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어떤 부분이나 지점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5살 때쯤 옆집에 피아노 선생님이 살고 계셨어요. 종종 왕래하면서 옆집에 놀러 갔던 건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선생님께서 ‘소녀의 기도’를 연주하실 때 제가 넋을 놓고 보고 있었던 기억은 정확히 나요.
그 연주가 마치 천국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순간이 저에게 있어 운명처럼 음악이 다가온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음악가로서 롤모델이 있다면? 올해와 내년의 계획,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와 꿈도 궁금합니다.
롤모델을 특별히 정해두지 않았고 각자의 활동을 멋있게 이어나가시는 선배님들처럼 저도 이오늘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저의 음악을 계속해서 들려드리고 싶어요. 올해는 싱글을 자주 발매할 것 같고 내년에는 미니, 또는 정규 앨범으로도 찾아뵙고 싶어요. 제 꿈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음악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