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엘비

by XINDIE posted Apr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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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22년 4월
아티스트 최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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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밖에서 시작했지만

 

주연에 의지하지 않고 내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글 임희윤 ㅣ 포토 & 스타일링 지운 @hereiscloudlandㅣ 편집 오상훈

 

 

  ‘대박 음악’도, dope/hip 음악’도 아니다. 난데없이 '독립음악'이라니…. 최엘비가 지난해 11월 낸 정규앨범의 제목은 롤렉스나 플렉스로 가득 찬 힙합계의 분위기에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누군 국힙원탑에/누군 빌보드 진출을 꿈꿨지만/나는 여전히 빛나는 조연이라도 되는 걸 원해’(‘주인공’ 중)

 

  세상의 스포트라이트 한 줄기 쬐어 본 적 없는 신인 래퍼라도 마치 세상 꼭대기에서 태어난 주인공처럼 구는 게 힙합 가사의 기본 태도일진데. 어쩐지 래퍼 최엘비는 그런 데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그러나 최엘비는 이런 음악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지난 3 1일 열린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음반’ 부문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난 살아가야 해/세상이 나를 때리는 것보단/죽는 게 훨씬 아플 테니까’(‘살아가야해.’ 중)라고 말하는, 우리 조연들의 주연 최엘비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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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일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독립음악'으로 '최우수 랩&힙합-음반'을 받았어요. 처음 호명될 때 느낌이, 받은 뒤 소감이 어땠나요? 지금 돌아보면 이 상을 받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 수상한 뒤 삶과 음악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혹시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받을 것 같아서 수상소감을 미리 써놨어요. 코로나 때문에 상을 받게 되면 미리 연락이 온다고 들었는데 일주일 전까지 연락이 없어서 조금 속상했거든요. 근데 극적으로 연락을 받고 그때부터 수상소감을 샴푸 들고 화장실에서 연습했어요. 근데 시상식 날 상을 받았는데 트로피가 샴푸랑 무게가 아예 달라서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가끔 한대음 수상소감들을 찾아보면서나는 죽기 전까지 이런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하고 아예 남 일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제가 서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어요. 나중에 제가 죽고 나서 제가 그랬던 거처럼 먼 미래 사람이옛날에는 누가 음악으로 상 받았는지 볼까?’ 하고 검색했을 때 제 음악이 나올 거고 한 번이라도 들어본다면 제 음악이 다시 살아나는 거라고 생각이 들어 상 받은 의미가 저에게는 정말 컸어요. 수상한 뒤에는 EBS<스페이스 공감> 촬영도 하고 여러 가지 제가 꿈꾸던 콘텐츠들 섭외가 많이 들어와서 제 인생에서 제일 바쁘게 지냈어요. 이전에는 저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는데, 너무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이제 상 받았으니까 착한 음악 말고 더 나쁜 음악을 해도 될 거 같아요.

 

'독립음악'의 표지에는 금붕어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부모님인 것 같은 두 분이 차 안에 계십니다. 꽃과 나비도 있네요. 등장인물을 이렇게 뽑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 표지에 꼭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과 함께 꽃길을 달려가는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자세히 보시면 제 반려 햄스터 콜리 형도 있어요. 뒤에 금붕어는베타라는 종의 물고기 ‘삼칠이인데요용궁에 갔어요. 표지에 가장 크게 박아서 제 음악과 제 마음 안에서는 살아있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CD에도 삼칠이를 넣었는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이상했어요. 엄마 아빠 차 위에 앉아있는 저 모습은 원래 차 위에 서 있는 모습인데 자리가 부족해서 앉아있는 걸로 했어요. 저는 독립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 아빠가 밑에 깔려 있는 모습이에요. 그리고 다른 표지가 하나 더 있는데요. 영화관 안에서 제 열등감의 원인이었던 친구들은 딴짓을 하고 저 혼자 울면서 받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 있는 그림이에요. 앞에서 설명했던 꽃길 표지가 제 독립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고 거기에 감명 받은 또 다른 제가 일어서는(독립) 의미가 있어요. 두 표지가 연결되는 거예요.

 

힙합은 코미디의 소재로 쓰일 정도로 자신감과 자기 자랑이 넘쳐나는 장르입니다. (당장 한국대중음악상의 또 다른 수상자인 창모의 '태지'만 봐도 그렇네요) 최엘비 씨가 열등감에 대한 가사들을 자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래퍼들처럼 허세도 부리고 세보이고 싶은 유혹도 많이 들 것 같은데요. 가사 쓸 때 최엘비 씨의 마음 속에는 슈퍼맨 최엘비는 없는 건가요?

 

저는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가사에 담아야 표현이 유치해지지 않아요. 뭔가를 지어내서 쓰면 자꾸 뻔해지고 유치해지더라고요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기억에 담아서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업 방식을 선호하는데 허세를 부리고 세 보이는 건 제 성격하고도 안 맞기도 하고 제가 워낙 찌질해서 그런 센 가사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요즘에는 이 찌질함을 어떻게 멋지게 표현할지 연구하고 있어요. ‘찌질최엘비맨에서 ‘슈퍼멋진찌질최엘비맨 되려고요.

 

30대로 접어들었죠? 최엘비 씨의 20대는 어땠나요? 30대에 가장 기대되는 것, 가장 크게 계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엘비의 우상 중에 30대를 가장 잘 보낸 사람, 그래서 30대의 롤모델이 돼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꼽아주셔도 좋겠어요.

 

저의 20대는 돌이켜보면 후회의 연속이었어요. 제가 강박이 심해서 뭔가 조금의 흠이 있으면 못 견디는데 인생에서는 흠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버텼지?’ 생각도 들어요. 근데 또 이런 흠들로 앨범들이 나왔잖아요. ‘좋은 인생이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20대의 인생들로 30살의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또 40대의 최엘비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겠죠. 가장 크게 계획하는 건 현실적으로는 집을 전세로 구하는 거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짧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 첫 단독 콘서트도요저의 우상 중에 30대를 가장 잘 보낸 사람은 덕원(브로콜리너마저)님이 아닐까 해요. 제가 만나본 분 중에 가장 바른 분이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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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잼과 비와이의 친구로, 자칭 조연으로 살아온 래퍼가 큰 상도 받고 실력자로 조명받고 있어요. 최엘비 씨의 성공은 재능의 산물일까요? 노력의 결과로 보시나요? 분야를 막론하고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살고 계신 분들에게 전해주실 비결이나 조언이 있을까요?

 

저는 최근에 방송 같은 걸 해보면서내가 끼나 재능은 정말 없구나…’ 생각을 했어요 무대 위에서 자유롭고 끼 많은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요 아직도. 그 사람들도 엄청나게 연습을 하겠죠? 저는 촬영 같은 걸 할 때 긴장을 너무 해서 머리가 하얘지기 때문에 멘트도 연습해 가야 말할 수 있고 가사가 입에 붙을 때까지 달달 외워가야 안 틀리고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방송에 80퍼센트까지 제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노력의 산물인 거 같아요. 저는 6년을 스스로를 조연이라고 생각하고 땅굴 속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이렇게 아무에게도 기억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죽으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서 제가 주연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기로 했고 생각보다 그게 잘 됐어요. 아예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주연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주연이 될 수 있는 내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오랜 팬이라고 밝힌 브로콜리너마저와 협업을 해냈습니다. 혹시 다음 앨범에서, 또는 다다음 앨범에서 꼭 같이 해보고 싶은 또 다른 우상 음악가가 있다면요?

 

이소라 선생님과 양희은 선생님이요이소라 선생님은 대학교도 저랑 같은 곳 같은 과를 나오셨더라고요그리고 양희은 선생님은 퍼그를 오랫동안 키우셨다는 소식을 듣고 관심이 생겨 음악들을 들었는데 제가 감히 담지 못할 감성들을 느꼈어요. 그 감성이 제 앨범에 들어간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거 같아요.

 

인디 (/) 밴드 음악을 학창시절부터 좋아했다고 들었는데, 힙합 말고 최근에 많이 듣는 음악이 있다면 어떤 그룹, 어떤 가수, 어떤 장르인지 궁금해요. , 음악 말고 요즘 꽂혀 있는 게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이번 한대음 후보자들을 보는데 이랑님 음악이 엄청 많이 올라가 있더라고요그래서 궁금해서늑대가 나타났다앨범을 들어봤는데 너무 좋아서 맨날 듣고 있어요. 음악의 수준이 정말 말도 안 되더라고요제가 너무 작아지는 느낌이었어요. 음악 말고 꽂혀있는 건 인터넷 방송 보기요. ‘우정잉이라는 분이 제 앨범을 언급해주셔서 방송을 찾아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구독도 하고 다른 스트리머들도 맨날 보고 있어요

 

올해와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음악가로서 장기적인 목표와 꿈도 궁금합니다.

 

 

올해는 제 첫 단독 콘서트를 할 거예요음악 시작하고 거의 10년 만이네요. 여태까지 냈던 앨범을 엮고 내레이션도 따로 녹음해서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들 거예요여태까지 봤던 콘서트들과 다른 새로운 느낌일 거고 저만이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이 방식을 선택했어요. 제 장기적인 목표는 평생 사는 음악이에요. 제가 죽고 나서도 누군가가 제 음악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한국 역사에 남는 명반을 남기고 전설이 되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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